[목 차]

     

     

    탄소자본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과 제도

     

     분자 혁명이 앞서 달려가면 그다음으로 구조와 제도, 시스템을 바꾸는 사회구조 혁명이 뒤따라온다. 그러므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과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획득하는 것은 동시에 작동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책임주체와 주체성과 주의 사이의 배치를 재배치하고 서로 연결시키는 작업이 필요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탄소자본주의 문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바꾸고, 기존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을 바꾸고, 삶을 재창 안 하고 재발견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지구의 생명들과 자연생태계, 사회 구성원들과 지구촌 사람들, 미래세대 등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민감하게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생태학을 그려나가야 할 것이다. 아무리 개인이 적극적으로 생활을 변화시키고 탄소 소비를 줄이기 위한 실천에 앞장선다 해도 이를 제도로써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면 각각의 실천이 모래알처럼 부서져서 그리 큰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따라서 공동체가 앞장서고 공공의 차원에서 밀어주고 당겨주는 제도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공공 차원에서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마련한 제도로는 무엇이 있을까?

     

    예를 들면 서울시와 환경부에서 주관하는 에코마일리지 제도가 그중 하나다. 에코마일리지 제도는 전기, 수도, 도시가스, 지역난방에 대한 컨설팅과 관리, 절약 실적에 따른 마일리지와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LED조명과 고효율 보일러, 태양광 발전시설, 단열창호, 냉난방 효율 향상 장치들에 대한 융자 및 보조금에 대한 우선권과 인센티브 지급 등을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제도들이 앞으로 더 확대되고 더 획기적인 제도들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실제로 공공서비스로 운용되고 있는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 우리가 이 제도에 영향을 끼치는 방법은 없을까?

     

    이쯤 해서 프랑스 녹색당 창단 멤버이자 심리치료사였던 프랑스 철학계의 이단아 펠릭스 가타리는 그가 사용하는 개념들의 도구 상자에서 갑자기 '제도 요법'을 꺼내 든다. 여기서 우리는 펠릭스 가타리를 이단아라고 표현한 이유를 알게 된다. 그는 철학적인 개념을 언제든 갖다 쓸 수 있는 연장통의 도구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가 제시하는 개념은 기존에 우리가 알던 단어에서 살짝 비틀어진 경우가 많다.

     

    구조화된 제도와 관계망으로는 관계망으로서의 제도가 구분된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와 공공영역 사이의 협치는 구조화된 제도와 관계망에서의 제도 사이의 교섭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가타리가 일단 관계망이 만들어지면 따로 입법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이미 제도화된 것으로 본다는 점이 특이하다. 즉, 관계망=제도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지점은, 아파트 주민들처럼 원자화된 개인으로 분해되어 관계망이 없다면 아무리 세련되고 정교한 제도가 있어도 무용지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아파트 문명을 넘어서 관계망을 만들기 위한 실천이 절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 탄소발자국을 줄이자는 얘기를 들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금욕주의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아껴 쓰고, 덜 쓰고, 줄여 쓰자는 얘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욕망이 커지면 탄소 소비가 많아진다는 공식이 있다. 그러나 욕망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먼저 자동차, 육식, TV, 아파트와 같은 원자화된 개인들의 통속적인 욕망을 자본주의적 욕망이라고 부른다. 자본주의적 욕망은 탄소발자국으로 아로새겨져 있는 욕망이며, 우리가 앞서 묘사했던 탄소 정육점에 기반한 욕망이다. 반면 보다 생산적인 욕망도 많다. 즐겁게 놀고 싶은 욕망, 과학, 혁명, 예술과 같이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은 욕망,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욕망, 다양해지고 풍부해지고 싶은 욕망, 심지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욕망 등등 말이다.

    반응형

    + Recent posts